회사소개

아세아발자취

경원산업의 설립

1957년 4월 26일 경원산업(주)가 설립되었다. 설립 자본금 200만원으로서 우승환씨가 단독 출자하였고 주로 석회석을 납품하는 탄광업체였다.

1961년 경원산업은 시멘트사업 참여를 계획하였다. 국가경제의 발달을 위해서 당시 국가의 시멘트 생산능력으로는 공급에 한계가 올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1961년 5월 경원산업은 시멘트공장 건설계획을 입안하였다. 1962년 12월 21일 경원산업은 경제기획원에 시멘트제조공장 건설허가 신청서를 제출, 열띤 경합 끝에 1963년 10월 30일자 언론에 경원산업이 제5시멘트 실수요자로 선정 되었다고 발표되었다.

1963년 11월 27일에는 국가최고회의의 외자도입 촉진위원회가 경원산업에 대한 제5시멘트 실수요자 선정안을 정식으로 승인하였고 12월12일에는 차관 계약을 허가하는 동시에 지불보증을 승인하였다. 이로써 석회석을 납품하면서 갈망해 온 경원산업의 시멘트공장 건설의 꿈은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다.

제천공장 건설

경원산업은 공장 입지조사 및 부지 매입에 들어가 공장건설부지로 충북 제천군 송학면 입석리를 결정 하였고 1965년 초에 숱한 어려움 끝에 총 6만여평에 달하는 공장부지 매입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1965년 4월 1일에는 제천공장 건설공사 기공식이 거행되었고 6월 21일에는 시멘트사업에 걸맞는 새로운 이름으로 상호를 변경, 충북시멘트공업 주식회사로 재출범하게 되었으며 이어 공사시작 1년 8개월만인 1966년 12월 13일 충북시멘트공업 주식회사 본관앞에서 제천공장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준공당시 시멘트 생산능력은 포틀랜드시멘트 년산 40만톤(최대 50만톤)이었다. 1967년 1월 15일부터 제품의 출하가 시작되었다.

충북시멘트는 1967년 8월 21일 주생산품인 포틀랜드시멘트(KSL 5201) 1종에 대한 한국 공업규격 (KS)표시허가를 획득(제287호) 하였다.
또, 11월 3일에는 미국의 저명한 공업경영고문인 실비(Silvy)씨를 초빙하여 원가분석 기업진단을 의뢰하였고, 1968년 1월 1일에는 상공부로부터 수출입허가를 획득(제744호), 국내판매는 물론 해외수출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생산성 향상과 품질개선을 위한 일련의 노력들은 이후 충북시멘트의 경영이념으로까지 승화되어 기업 발전의 밑거름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꿈은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다.

경영권 이관

1968년 4월 12일에 現 아세아그룹의 창시자인 瑞峰 李東寧 會長(92년 작고)이 충북시멘트 주식의 50%를 인수, 최대주주로 부상하면서 실질적으로 충북시멘트를 인수하였다. 이동녕 회장은 당시 3선 국회의원이자 鳳鳴黑鉛鑛山 외 다수의 무역, 에너지 관련 우량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던 유망 경영인이었다.

또한 문경학원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사업을 통해 사회사업가로서의 명성도 높은 인물이었다. 후발 시멘트업체로서 가장 적은 생산능력에다 자금원이 부족하였던 충북시멘트를 인수하게 된 동기는 장차 국가경제 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기간산업에 투자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하려는 이동녕 회장의 투철한 의지가 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경영권 이관은 장차 충북시멘트가 발전 해나가는데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첫째로 투자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는 점이다. 거대장치산업으로서 미래에 성장하기 위한 막대한 투자자금조달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시설 투자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둘째, 풍부한 기업 경영활동 경험을 구비하고 국가기간산업 발전에 대한 뜨거운 의욕을 가진 새로운 경영자가 기업을 인수함으로써 충북시멘트 발전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준 점이다.

110만톤 증설(연산 170만톤)

1973년 10월 충북시멘트는 증설문제 재검토에 착수 하였다. 이는 1973년에 들어서면서 국내 시멘트 업계가 그동안 누적되어온 깊은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왔고 대규모 건설사업이 연이어 시행되면서 시멘트의 국내수요 또한 급격히 증가하는 등 업계의 경기가 좋아진 때문이었다.

또한 1976년까지 국내 시멘트업계가 모두 국제 단위 규모인 년산 100만톤 이상의 규모를 갖출 전망 이었기에 더 이상의 상대적인 열세를 막기 위해서라도 증설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 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1973년 11월 10일 기존 충북시멘트공업주식회사에서 아세아시멘트공업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 장차 시멘트 년산 170만톤 규모의 국제적인 시멘트회사에 걸맞는 위상을 정립하였다. 아세아시멘트는 증설 체제를 갖춘후 1974년 5월 11일 110만톤 증설공사에 착수, 2년반만인 1976년 11월 20일 증설공사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바로 클링커 一日 생산 능력 3,200톤의 킬른3호기 신설 공사가 완공된 것이다. 이로써 기존의 킬른1호기, 2호기에 이어 킬른 3호기가 추가되어 시멘트 년산 170만톤의 생산능력을 갖춘 국제규모의 생산업체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아세아시멘트는 11월 20일을 창립기념일로 지정하여 매년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또한 증설자금의 원활한 조달을 위해 1974년 3월 18일 기업을 공개 하여 민주적인 국민경제체제에 부합하는 국민의 기업으로 변신하였다.

170만톤 증설 (연산 450만톤) 및 시설개조로 연산 500만톤

1997년 4월 13일 대구 시멘트 분쇄공장 준공 (연산50만톤)으로 연간 총 220만톤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 아세아시멘트는 본공장인 제천공장의 지속적인 시설개조로 1979년 6월 30일에 연산 180만톤 (총230만톤), 1982년 7월 20일에 연산 230만톤 (총280만톤)의 생산능력을 구비하게 되었고 1988년 6월 20일 170만톤 증설사업에 대한 종합계획을 수립, 증설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당시 생산능력에 있어서 국내 동업타사에 비해 상대적인 열세에 있던 아세아시멘트로서는 향후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편의 하나로 생산능력의 증대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1988년 11월 1일을 기해 본사 건설본부와 공장 건설사무소가 발족하였고 1989년 1월 21일을 기하여 170만톤 증설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증설공사에는 킬른1호기 개조공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1990년 3월 15일 킬른 1호기 개조공사 완료로 연산 260만톤 (총310만톤)을 달성하였으며 1990년 9월 18일에는 킬른4호기 신설공사가 준공되어 170만톤 증설공사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이로써 아세아시멘트의 시멘트 생산능력은 제천공장 연산 400만톤, 대구시멘트 분쇄공장의 연산 50만톤을 포함하여 도합 시멘트 연간 생산능력 450만톤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후, 1999년 4월 6일 제천공장 킬른3호기 시설 개조공사가 준공되어 아세아시멘트의 연간 총 생산능력은 500만톤으로 증가하여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시멘트제조 회사로 발전하게 되었다.